본문 바로가기
도시 미학

한 해의 끝에서 꺼낸, 막걸리 한잔

by 맛복이 한 스푼, 도시의 맛 2025. 12. 31.

한 해를 마무리하며 가장 맛있었던 음식이 무엇이었는지를 떠올리는 일은 마치 오래된 일기장을 다시 여는 일과 닮아 있다.

분명 많은 음식을 먹었는데, 막상 한 줄로 적을 만한 맛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꼭 챙겨 오고 싶은 것들이 생긴다.

그것은 물건이라기보다 기억을 오래 붙잡아 두기 위한 표식에 가깝다.

맛에 대한 기억, 장소에 대한 기억,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에게서 느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정서의 흔적들을 한 장면씩 가져온다. 몇 주 전, 고흥에서 유자막걸리를 담가 주셨다. 큰 병에 담아 주겠다는 말을 혼자는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다며 사양하고, 작은 병 하나만 받아 왔다. 맛만 보면 된다는 말은 주겠다는 분의 배려였다. 한 해의 끝자락,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낮부터 공기가 급격히 가라앉던 날이었다. 입가심처럼 한 잔 마실 생각으로 고흥 유자막걸리를 꺼냈다. 잔에 따르고, 한 모금을 마시는 순간 이 술을 왜 이제서야 꺼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한 해가 지는 마지막 날 조용한 시간에 그 술을 꺼내어 더 향과 맛이 깊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유자

향이 깊지도 막걸리가 걸쭉하지도 않은 딱 적당한 기분 좋은 맛에 갑자기 안주를 불렀다. 안주는 술과 곁들이는 음식으로 고흥에 갔을 때 고흥 인근에 있는 낙안읍성 술 명인이 안주는 한자로 按酒'누르다', '억제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술을 마실 때 몸을 해치지 않게 하는 것을 돕는다는 말로 술이 주가 되고 음식이 곁들여지면 안주가 된다고 한 말이 생각난다. 유자향이 살짝 나는 막걸리 안주에는 역시 전이 생각났다. 무겁지 않은 한입에 좋은 전으로 명란이 생각나 명란과 양배추를 채 썰어 계란과 밀가루로 반죽하여 한 입 크기에 전을 하고 삼치에 밀가루를 살짝 입히고 계란을 적셔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살짝 부쳤다. 안주가 준비되니 막걸리를 마시는 마음도 더 설레기 시작했다.

명란전을 한입 먹으니 부드러움과 전의 고소함이 느껴지며 유자막거리를 한 모금 마시게 된다. 막걸리의 시원함이 느껴진다.

그 순간, 고흥의 바다가 떠올랐다. 고흥의 조용한 바다와 잔잔히 불어오는 바람이 느껴진다. 아침의 고요함과 빛도 생각이 나며 다시 고흥의 추억이 떠오른다. 술은 주인을 닮는다는 말이 맞다. 한 모금을 넘기는 동안 고흥의 집 앞마당에서 쌀과 누룩을 정성스럽게 다루었을 마음이 전해진다.

조금 주겠다는 마음을 사양했던 마음이 이제 와서야 아쉬움이 남겨진다.

 

한 해를 돌아보며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무엇을 먹었는지가 아니라 어떤 순간에 그 음식을 먹었는가에 가깝다.

다음 해는 또 다른 추억과 맛을 기다리며 준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