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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지역문화

영종진 현양제|151년 전 바닷길을 지킨 35명을 기억하다

by 맛복이 한 스푼, 도시의 맛 2026. 10. 24.

영종진 현양제|151년 전 바닷길을 지킨 35명을 기억하다

영종도 구읍뱃터 가까이, 바다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영종진공원이 있습니다. 해마다 가을이면 이곳 태평루에서 151년 전 영종진을 지키다 이름 없이 스러진 35위 호국영령을 기리는 제사가 열렸습니다. 주민들이 2005년부터 이어온 '영종진 전몰영령 현양제'입니다. 

강화를 지키는 남쪽 바닷길, 영종진

영종진은 처음부터 영종도에 있던 군진이 아니었습니다. 본래 경기 남양에 있던 영종진은 1653년(효종 4) 자연도, 지금의 영종도로 옮겨 왔습니다.

이전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은 강화도를 수도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 곧 보장처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겨울이면 염하 해협이 유빙으로 막혀 강화도로 들어가는 길이 끊길 수 있었고, 서해에서 한강으로 들어오는 바닷길 가운데 강화도 남쪽을 지나는 길은 방어가 약했습니다. 그 빈틈을 메울 자리로 선택된 곳이 자연도였습니다.

조선 정부는 영종진을 옮기면서 병력을 채우고 군량 2,000석을 배정해 창고를 짓게 했으며, 판옥선을 중심으로 전선 체계를 갖추었습니다. 이때부터 영종진은 강화도 방어의 남쪽 축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수군진에서 독진으로

영종진의 위상은 이후 한 세기 동안 꾸준히 높아졌습니다.

1681년(숙종 7)에는 지휘관이 만호에서 첨사로 격상되고 어영청 파총을 겸하게 되면서, 중앙군에 직속한 전략기지가 되었습니다. 1690년에는 종2품 방어사가 지휘하는 방어영으로 승격했고, 1758년(영조 34)에는 「영종독진절목」이 반포되어 독자적인 지휘권을 가진 독진이 되었습니다.

강화도 내부는 육군이, 바깥 섬들은 수군이 지키는 방어체계 속에서 영종진은 강화도 남부 해역을 맡았습니다. 교동의 통어영과 함께 경기 연해의 수군진을 나누어 관할하는 두 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섬의 부담도 컸습니다. 『여지도서』에 따르면 1759년 자연도 인구는 약 3,000명이었는데, 그중 군병이 1,400여 명에 달했습니다. 인구에 비해 병력 수요가 지나치게 많았지만, 조선 정부는 영종진의 전략적 가치를 고려해 방어영 체제를 유지했습니다. 섬사람들의 삶이 곧 바닷길 방어였던 셈입니다.

19세기에 들어 이양선 출몰이 잦아지자 영종진의 역할은 더욱 커졌습니다. 영종진은 1866년 프랑스 함대와 1868년 오페르트 일행의 공격을 잇따라 막아냈습니다.

 

1875년 9월, 운요호

그리고 1875년 9월,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 앞바다에 나타났습니다. 운요호는 9월 20일 강화도 동남쪽 난지도에 정박했고, 해병들이 식수 보급을 명목으로 보트를 타고 물길을 살피며 초지진으로 접근했습니다. 초지진에서 교전이 벌어지자, 운요호는 방향을 돌려 영종진을 공격했습니다.

동이 트기 직전 일본군이 성의 동문 근처로 상륙했고, 흰 옷을 입은 조선 수비군은 구식 화승총과 활로 맞섰습니다.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조선군은 전사자 35명, 포로 16명의 인명 피해를 입고 대포 36문과 화승총 130자루를 빼앗겼지만, 일본군 전사자는 2명에 그쳤습니다. 운요호 사건은 이듬해 강화도조약으로 이어졌습니다.

200여 년 동안 강화의 남쪽 바닷길을 지켜온 영종진의 시간도 여기서 기울었습니다. 백운산 자락에 다시 세웠지만 곧 개항이 이루어지고 군사적 필요가 줄어 1895년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습니다.

 

사라질 뻔한 역사, 주민이 지켜낸 기억

전투 끝난 자리는 오랫동안 잊혔습니다. 폐허가 된 터에 민가가 들어서고 밭이 일궈지면서 관아와 성곽 흔적은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영종도의 역사를 다시 발굴하고 연구한 것은 주민들이었습니다. 2005년 주민 주도로 시작된 추모제는 해마다 가을 영종진 터에서 열렸습니다. 영종도 토지 개발 과정에서 영종진 터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을 때도, 주민들의 요청이 개발의 수용 조건으로 반영되면서 공원으로 복원되었습니다.

포격과 방화로 사라졌던 태평루는 2015년 8월 전통 건축 양식으로 다시 세워졌고, 2018년에는 영종역사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전투의 흔적만 남았던 땅이 교육과 문화의 공간으로 바뀐 것입니다.

지난해 150주년에는 주민들이 직접 기념 행사위원회를 꾸려 추모제와 함께 학술 토론회, 주민 참여 역사 사진전, 해설사 투어를 열었습니다. 역사가 박물관 속 유물에 머물지 않고 살아 있는 공동체의 기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자리였습니다.

 

150주년에서 151주년으로

지난해 2025년은 운요호 사건 150주년이었습니다. 10월 12일 열린 기념행사는 1부에서 희생자 35인을 기리는 현양제를, 2부에서 '운요호 사건 150주년의 재조명과 인천 영종지역의 기억'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제사로 넋을 위로하고, 토론으로 그 의미를 다시 묻는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1년 뒤인 2026년 10월 2일, 151주년을 맞아 영종진공원 태평루에서 '제22회 영종진 전몰영령 현양제'가 열렸습니다. 이날은 음력 8월 22일, 주민들이 해마다 제사를 올려온 바로 그날입니다.

현양제는 올해도 영종진현양사업회가 주민들의 정성을 모아 마련했습니다. 지역 주민과 관계자들은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순국한 35위 호국영령의 넋을 위로했습니다.

올해는 영종구가 출범한 첫해이기도 합니다. 새로 출발하는 영종구가 151년 전 이 땅을 지킨 이들을 기억하며 지역의 뿌리를 되새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해졌습니다.

2025 영종진 운요호 사건 150주년 기념 영종진현양제
2026 영종진 운요호 사건 151주년 기념 영종진현양제

영종진공원을 걸으며

영종진공원은 제삿날이 아니어도 천천히 걸어볼 만한 곳입니다. 수령 300년의 느티나무와 무너진 성벽, 전몰영령 추모비, 재현된 성벽과 태평루, 대포, 영종역사관이 모여 있어 옛 영종진의 모습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추모비 앞에 서면 구읍뱃터와 바다가 내려다보입니다. 수비군이 지키던 그 바다는 지금 여객선과 다리가 오가는 바다가 되었습니다. 영종도는 수도를 지키던 군사 요충지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오늘날 인천국제공항이 자리한 나라의 관문이 되었습니다. 바닷길을 지키던 섬이 이제 하늘길을 여는 섬이 된 것입니다.

복혜정 영종진현양사업회 위원장은 영종진공원이 역사의 현장이자 주민들에게 특별한 기억의 장소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현양제가 희생자를 기리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의 교훈을 바탕으로 주민이 화합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행사로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현양(顯揚)은 이름을 드러내어 널리 알린다는 뜻입니다. 이름조차 다 전하지 않는 35명의 수비군을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불러내는 일, 그것이 영종진 현양제가 22년 동안 이어진 이유일 것입니다.

바다를 지키던 성은 무너졌고,
빼앗긴 대포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 자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남았습니다.

영종진 현양제는 섬이 스스로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올리는 제사였습니다.

 

관련 영상

영종진 피격 전몰 35인...잊힌 이름 찾는다 - 티브로드 인천방송(2016)

https://youtu.be/0aqmCa7tefI?si=X3LJwuyaguQdaZwa

 

 

1875년 '운요호 침입' 잊지 않기 위해... 사건 150주년 맞아 영종진 전몰영령 추모(2025)

 

영종진 현양제 정보

  • 명칭: 제22회 영종진 전몰영령 현양제 (2026)
  • 일시: 2026년 10월 2일(금), 음력 8월 22일
  • 장소: 영종진공원 태평루 (인천광역시 영종구 구읍로 63, 중산동)
  • 주관: 영종진현양사업회
  • 의미: 1875년 운요호 사건 때 영종진을 지키다 순국한 35위 호국영령 추모
  • 영종진 연혁: 1653년 남양에서 자연도로 이설 → 1681년 첨사진 → 1690년 방어영 → 1758년 독진 → 1875년 운요호 사건 → 1895년 폐지
  • 현양제 연혁: 2005년 주민 주도 시작 → 2015년 태평루 복원 → 2018년 영종역사관 개관 → 2025년 150주년 기념행사
  • 함께 볼 곳: 전몰영령 추모비, 태평루, 재현 성벽, 300년 느티나무, 영종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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