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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금오도 송고당제|송고마을 당제, 산과 바다에 마을의 안녕을 빌다

맛복이 한 스푼, 도시의 맛 2026. 10. 24. 11:54

여수 금오도|송고마을 당제, 산과 바다에 마을의 안녕을 빌다

전라남도 여수 금오도의 북쪽 끝에 송고마을이 있습니다. 이 작은 바닷가 마을에는 해마다 정월 초,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비는 당제가 열립니다. 주변 섬마을의 당제는 대부분 사라졌지만, 송고마을은 지금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솔고지라 부르던 송고마을

송고마을은 여수시 남면 유송리에 속한 마을입니다. 면소재지인 우학마을에서 북쪽으로 약 8㎞ 떨어져 있습니다. 마을 뒤로 매봉산이 동서로 뻗어 있어 집들은 바닷가를 따라 길게 자리 잡았습니다.

마을 이름은 바다 쪽으로 가늘고 길게 뻗은 곶에서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이 곶을 '솔고지'라 불렀고, 한자로 옮기면서 송고(松高)가 되었습니다. 마을 전체가 소나무 숲으로 푸르렀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집니다.

마을의 시작은 18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사슴 사냥을 나왔던 김양단이 산과 물이 수려한 이곳에 반해 가족을 데리고 정착했고, 이후 밀양 박씨와 경주 김씨 등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마을의 평안을 비는 당제

거친 바다와 함께 살아온 여수 사람들에게 자연은 언제나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육지보다 삶의 위협이 컸던 만큼 신앙에 기대는 마음도 깊었습니다. 정월마다 마을에서 지내던 당제는 여수 섬마을의 생활과 문화를 보여주는 풍경이었습니다.

송고마을에는 오래전 호랑이가 사람을 해친 일이 있었고, 그 뒤로 마을의 안녕을 빌기 위해 당제를 모시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주민들은 당제를 모시는 일을 "제만 모신다"고 말하고, 제를 모시는 사람을 '제만' 또는 '당주'라 부릅니다.

1980년대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여수 지역의 마을 제의는 대부분 원형을 잃거나 사라졌습니다. 그 속에서 송고마을은 자연을 섬기고 공존하는 마음을 제의 형식으로 지켜왔습니다.

상당에서 하당으로

당제는 섣달그믐에 날을 받고, 부정이 없고 깨끗한 사람을 당주로 정하면서 시작됩니다. 당주로 정해진 사람은 그날부터 금기를 지키고, 제를 지낼 곳을 청소하고 금줄을 칩니다. 제사 비용은 마을 기금으로 마련합니다.

송고당제의 가장 큰 특징은 당주가 혼자서 제를 모신다는 점입니다. 제는 정월 초이튿날 밤 12시 무렵, 세 곳을 차례로 돌며 이어집니다. 송고마을 당제는 상당제와 하당제, 선창에서의 헌식제로 이어집니다.

상당제 — 마을 뒷산 숲 속 바위에서 산신을 모십니다. 산신은 들에 머무는 신이라 따로 당집을 짓지 않았습니다. 당주는 바위 아래에서 직접 메를 지어 솥째 올리고, 상이나 그릇 없이 한지 위에 제물을 놓습니다. 사방으로 절을 하고 마을의 평안과 풍어, 고향을 떠난 이들의 안녕을 비는 소지를 올립니다.

하당제 — 마을 곁 소나무 당산나무에서 당할머니를 모십니다. 당주는 집으로 돌아와 다시 메를 지어 하당에 올리고, 국과 과일을 함께 차려 술을 올리고 절합니다.

용왕제 — 마지막으로 선창에 나가 바다에 제를 올리고, 제물을 바다에 바칩니다. 세 곳의 제를 모두 마치면 어느새 날이 밝아옵니다.

예전에는 섣달그믐이나 정월 초하루에 지내기도 했지만, 지금은 정월 초이튿날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제를 모시는 밤에는 마을 전체가 일찍 불을 꺼야 하는데, 설을 맞아 고향을 찾은 자식과 손주들과 보낼 시간을 남겨두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바다에 차리는 마을의 밥상, 무래밥

당주 혼자의 밤이 지나면, 이튿날 아침은 마을 모두의 시간입니다.

오전이 되면 마을회관 앞 선창가에 상이 줄지어 놓입니다. 당주 집에서 마련한 제물상 옆으로 집집마다 차려온 음식상이 30개 가까이 길게 늘어섭니다. 당주가 각 상에 술을 한 잔씩 따르고, 매구꾼들이 바다를 향해 매구를 치는 가운데 절을 올립니다.

제가 끝나면 상마다 음식을 조금씩 떼어 주머니에 담아 바다에 던집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것을 용왕에게 대접하는 밥, '무래밥'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상을 둘러싸고 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습니다. 풍물패는 마을을 돌며 매구를 치고, 한바탕 흥겨운 놀이판이 벌어집니다.

산에 메를 올리고, 나무 아래 국을 놓고, 바다에 밥을 나누는 일. 송고당제는 결국 섬사람들이 자연에게 먼저 밥상을 차리고, 그 밥상을 다시 이웃과 나누는 일이었습니다.

 

 

 

정월의 당제와 가을의 재현공연

 

송고당제는 본래 정월 초, 마을 사람들끼리 조용히 모시는 제사입니다. 그 제사가 지난 10월 22일, 가을의 무대 위에서 다시 한 번 펼쳐졌습니다. 주민들이 지켜온 제례를 재현해 마을 밖 사람들에게 보여준 자리였습니다.

재현된 제상 앞에서 비는 내용은 정월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바다에 나간 사람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밭의 곡식이 잘 자라기를, 고향을 떠난 가족이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한 집의 바람이 이웃의 바람과 만나 마을의 제사가 됩니다.

이 제사가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원형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의지 덕분입니다. 송고마을 당제는 2012년 작은공동체 전통예술큰잔치에 선정되었고, 최근에는 여수농악보존회와 여수삼동매구 등이 함께 재현공연을 열며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있습니다.

당제를 이어가는 데에는 여러 사람의 손이 필요합니다. 제를 맡는 사람,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 매구를 치는 사람, 그리고 다음 세대에 순서와 뜻을 알려주는 사람이 함께해야 합니다.

화려한 축제는 아닙니다. 당주 한 사람이 밤새 산과 나무와 바다를 오가며 차린 제상, 다음 날 아침 선창에 늘어선 집집의 밥상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그 단순한 반복 속에 섬마을이 백 년 넘게 지켜온 공동체의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산과 바다를 공경하고 이웃의 무사함을 함께 비는 마음이 오늘의 송고마을로 이어집니다.

산에 메를 올리고,
바다에 밥을 나누고,
이웃과 둘러앉아 음복하는 아침.

송고당제는 섬이 한 해를 여는 가장 오래된 밥상이었습니다.

송고당제 정보

  • 위치: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유송리 송고마을 (금오도)
  • 시기: 매년 음력 정월 초이튿날 밤 ~ 이튿날 오전
  • 순서: 상당제(산신) → 하당제(당산나무) → 용왕제(선창 헌식제)
  • 특징: 당주 홀로 지내는 밤의 제사, 마을 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아침 용왕제
  • 제물: 메, 떡국, 돔, 김, 과일, 나물 등
  • 관련 행사: 송고당제 재현공연 (2026년 10월 22일)
  • 참고: 2026년 10월 22일 송고당제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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