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어가 돌아왔다? 인천 문갑도
문갑도 민어가 운다. 문갑도 섬 밥상
복혜정의 맛기행 <인천 섬 밥상>
여름의 문갑도에 내리자 가장 먼저 바다 냄새가 밀려왔다. 짙은 갯내음은 거칠지 않았고, 포구에는 잔잔한 파도 소리가 이어졌다. 햇빛은 바다 위를 천천히 미끄러지며 작은 섬을 감싸고 있었다. 조용한 섬이지만 섬의 매미 소리는 이미 여름이 한창이었다.
이번 문갑도 섬밥상 조사는 한 끼의 음식을 기록하는 일이 아니라, 섬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살아온 시간을 기록하는 여정이었다.
이번 조사의 주제는 문갑도의 식재료와 음식문화를 기록하는 것이었다. 주민들의 구술을 통해 사라져가는 섬의 음식문화를 남기고, 여름철 대표 어종인 민어를 중심으로 문갑도의 계절 밥상을 아카이브로 구축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자연환경과 생업, 계절의 변화가 함께 만든 생활문화라는 사실을 현장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문갑도의 여름을 이해하려면 먼저 민어를 알아야 한다. 민어는 인천 바다를 대표하는 생선이었고, 덕적군도의 역사와 함께 살아온 어종이었다. 1920년 굴업도 인근 장봉수도에서 대규모 민어 어장이 발견되면서 전국 각지의 어선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1923년 무렵 굴업도는 성어기인 7월부터 9월까지 수백 척의 어선과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이는 거대한 민어 파시를 이루며 '바다 위의 도시'라 불렸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대태풍이 굴업도를 덮쳤다. 수많은 어선이 파선되고 마을이 무너졌으며, 수천 명의 뱃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되는 비극이 일어났다. 이후 민어 파시는 점차 덕적도 북리항으로 중심이 옮겨 갔다. 1930년대 후반 북리항은 인천 민어파시의 중심지로 성장했고, 해방 이후에도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어선의 대형화와 원양어업이 시작되면서 북리항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문갑도와 소야도, 이작도 사이의 '반도골'은 지금도 민어가 오르는 대표적인 바다로 기억된다. 민어는 단순한 생선이 아니라 이 섬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이어주는 존재였다.



문갑도 조사 첫날에는 민어를 공수해서 덕적도와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문갑도 해안가에서 민어를 해체하는 전 과정을 기록했다. 두툼한 민어회, 고소한 민어부레회, 깊은 맛을 내는 민어탕, 담백한 민어전까지 한 마리의 민어는 버릴 것이 없었다.
민어 한 마리만 식탁에 올라와도 마을 사람들의 기억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누군가는 예전 파시 이야기를 했고, 누군가는 복날이면 집집마다 민어를 삶아 먹던 시절을 떠올렸다. 어떤 부위가 맛있는지 맛은 어떤지에 대해 민어는 음식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기억을 꺼내는 매개였다.


둘째 날에는 문갑도 곳곳에서 자라는 식재료를 조사했다. 바다에서는 모자반, 창자파래, 톳, 미역귀가 자라고 있었고, 산에서는 벙구와 개두릅, 갯방풍, 칡순, 둥굴레, 도라지, 오가피순이 섬의 계절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름 산길에는 산딸기와 복숭아, 개복숭아, 해당화 열매가 익어가고 있었으며, 바다에서는 민어 외에도 가오리, 가자미, 갱, 참갱, 무라, 쫌, 소라, 바지락 등이 여름 밥상을 채우고 있었다.
문갑도의 여름 밥상은 민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모자반과 창자파래는 국과 무침이 되고, 톳과 미역귀는 반찬이 된다. 봄에 잡아 담가 둔 꽃게무침은 여름 식탁에 오르고, 바지락은 시원한 국물이 되어 곁들여진다. 산에서는 벙구와 개두릅을 따 나물과 장아찌를 만들고, 여름 과일은 후식으로 든든한 밥상이된다. 시장에서 사 오는 식재료보다 섬에서 얻는 자연이 먼저 밥상을 차린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벙구'였다. 다른 지역에서는 음나무나 엄나무라고 부르지만 문갑도에서는 모두 '벙구'라고 한다. 벙구는 지천에 자라고, 벙구를 따서 나물로 무치고 장아찌를 담근다. '벙구'라는 이름에는 문갑도 사람들의 말과 생활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이름 하나가 지역의 문화가 되고, 음식이 되는 것이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음식은 하늘타리 칼국수였다. 주민들은 하늘타리 뿌리를 갈아 여러 번 물에 담가 독성을 없앤 뒤 가라앉은 전분만 모아 칼국수를 만들어 먹었다고 이야기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구황음식이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그 한 그릇에는 섬사람들의 생존 방식과 삶의 지혜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문갑도는 조선시대 『조선지지자료』에 인천부 덕적면 문갑리로 기록되어 있다. 섬의 모 양이 선비의 책상인 문갑을 닮아 '문갑도'라는 이름이 붙었고, 조선시대에는 투구를 쓴 장수의 모습과 닮았다 하여 '독갑도'라고도 불렸다. 작은 섬 하나에도 오랜 역사와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어촌계장과 주민, 민어 손질 담당자, 어업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모두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같은 말을 했다. 문갑도의 음식은 특별한 조리법이 아니라 계절에 가장 좋은 재료를 가장 자연스럽게 먹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섬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제철에 먹는 것, 그것이 문갑도 섬밥상이다.

우리는 민어를 찾아 문갑도에 들어갔다. 그러나 조사 마지막에 남은 것은 민어 한 마리의 기록이 아니었다. 벙구와 하늘타리, 해당화 열매, 해조류와 산나물, 그리고 그 음식을 기억하고 이어가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문갑도의 섬밥상을 이루고 있었다.
문갑도에서 기록한 것은 음식이 아니라 삶이었다. 계절은 다시 돌아오고 민어도 다시 바다를 오른다. 사람들은 그 민어를 손질하며 지난 시간을 이야기하고, 오래된 밥상을 다시 차린다. 그래서 문갑도의 민어는 오늘도 조용히 운다. 그 울음은 한 그릇의 섬밥상이 되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오래도록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