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미학

오뉴월 밴댕이

맛복이 한 스푼, 도시의 맛 2026. 5. 18. 11:33

 

 오뉴월 밴댕이

강화도에는 밴댕이회무침거리와 밴댕이마을이 있을 만큼 밴댕이가 유명하다. 서해가 따뜻해지는 오뉴월이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밴댕이를 찾는다. 미나리와 채소를 넣어 매콤하게 무친 밴댕이회 한 접시는 초여름 서해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밴댕이는 청어과 바닷물고기다. 몸은 옆으로 납작하고 길이는 15cm 안팎이다. 등은 청록빛을 띠고 배는 은백색이다. 멸치와 비슷해 보이지만 몸통이 훨씬 넓고 납작하다. 아래턱이 위턱보다 길게 튀어나와 있어 쉽게 구분된다.

서해와 남해에서 두루 잡히지만, 대표 산지는 강화도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강화 앞바다는 밴댕이가 자라기 좋은 환경이다. 겨울 동안 깊은 바다에 머물던 밴댕이는 수온이 오르면 연안으로 이동한다. 산란기를 앞둔 5월과 6월에는 살이 오르고 기름이 차오른다. 오뉴월 밴댕이가 가장 맛있는 이유다.

 

조선시대에도 밴댕이는 귀한 생선이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소어(蘇魚)’라는 이름으로 기록돼 있고, 궁중 음식을 맡던 사옹원에는 밴댕이를 담당하는 ‘소어소’가 따로 있었다. 광해군 시기에는 오뉴월 밴댕이를 보리밥과 쌈으로 먹었다는 기록도 전한다. 난중일기에는 이순신 장군이 어머니께 밴댕이젓을 보냈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밴댕이는 성질이 급한 생선으로 유명하다. 그물에 걸려 물 밖으로 나오면 금세 죽는다. 이 성질 때문에 속이 좁고 쉽게 토라지는 사람을 두고 ‘밴댕이 소갈머리’라고 부르게 됐다. 속이 거의 없는 생선이라 ‘속 좁다’는 말까지 붙었다.

밴댕이는 오래 두기 어려운 생선이다. 잡은 지 시간이 지나면 살빛이 금세 붉게 변한다. 냉동 시설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현지가 아니면 회로 맛보기 어려웠다. 지금도 제철이 지나 식당에서 나오는 밴댕이회는 인천에서 강화도, 김포 외에는 대부분 냉동 보관한 것을 사용한다.

 

 

오뉴월 밴댕이회의 맛은 달큰하다. 머리와 가시를 걷어내고 양쪽 살만 발라낸 뒤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살은 부드럽고 기름은 고소하다. 입안에서 천천히 풀리며 사라진다. 상추에 싸 먹어도 좋고, 미나리와 함께 무쳐 먹으면 특유의 산뜻한 맛이 살아난다.

밴댕이는 젓갈로도 많이 먹는다. 소금에 삭힌 밴댕이젓은 오래전부터 귀한 반찬이었다. 파와 마늘, 풋고추를 넣고 무치면 밥 한 공기가 금세 비워진다. 밴댕이를 말린 띠포리(디포리)는 육수 재료로 쓰인다. 멸치보다 깊고 진한 국물 맛을 낸다. 국물 한 냄비의 맛을 정리하는 데에는 밴댕이만 한 재료도 드물다.

강화 사람들은 예부터 5월 사리 때 잡은 밴댕이를 가장 귀하게 여겼다. 좋은 밴댕이는 귀한 손님상에만 올렸다. 짧은 계절에만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 남지 않아 더 기억나는 생선. 오뉴월 밴댕이는 지금도 서해 초여름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