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미학

한 해를 여는 명절 음식, 떡국

맛복이 한 스푼, 도시의 맛 2026. 2. 5. 11:02

2026년 새해가 밝았다.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해다. 병화는 태양이고 오화는 정오의 불길이다. 태양의 기운을 품은 병화와 정오의 불길을 상징하는 오화가 만나는 해라 하니, 가만히 있어도 무엇이든지 하고 싶게 만드는 해이다. 오랜 시간 참고 버텨온 사람들에게도, 어쩐지 좋은 일이 많아질 것 같은 예감이 스친다.

붉은 말이라 하면 자연스레 삼국지의 적토마가 떠오른다. 여포를 거쳐 관우에게 간 그 말은 결국 주인을 알아본다. 관우의 붉은 수염과 청룡도를 등에 업고 전장을 달리던 적토마는 충절과 절개의 상징이 되었다. 사람을 베는 이야기보다, 변하지 않는 마음 하나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한 해를 시작하는 지금, 우리에게도 변치 않는 마음 하나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에도 명절마다 챙겨 먹는 고유한 음식이 있다. 음력 새해 첫날인 설날에는 떡국을 먹으며 신년을 맞이했다. 설날 아침, 집 안에 퍼지던 맑은 국물 냄새와 하얀 떡의 온기가 느껴진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떡국 한 그릇을 나눠 먹는 풍경은 우리네 설날의 가장 따뜻한 장면이었다.

 

설날에 먹는 떡국은 국수처럼 길게 늘인 가래떡을 동전처럼 둥글게 썰어 만든다. 떡국은 소망을 담는다. 하나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꿈, 또 하나는 풍요로운 삶에 대한 소원이다. 흰 가래떡은 새해의 밝음과 순수함을, 길게 뽑은 모양은 장수를, 동그랗게 썬 떡은 엽전처럼 재물을 상징한다. 한 그릇 떡국에는 무병장수와 재물 번영을 기원하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요즘은 마트에서도 쉽게 떡국떡을 살 수 있지만, 예전에는 설을 앞두고 동네 떡방앗간에 긴 줄이 늘어서곤 했다. 차례를 기다리며 손에 쥔 비닐봉지 안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던 가래떡. 집에 돌아와 조청이나 설탕에 찍어 먹던 그 맛은 설날을 앞둔 작은 즐거움이었다.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떡과, 달콤한 조청의 향이 입안 가득 퍼지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먹을 것이 넘치는 지금과는 다른 시간의 풍경이다.

 

옛날에는 "떡국을 먹어야 나이를 한 살 먹는다"고 했다. 그만큼 떡국은 새해를 맞이하는 빼놓을 수 없는 풍습이었다. 조선시대부터 '첨세병(添歲餠)'이라 불리며 설날 음식으로 자리 잡았고, 동국세시기에도 '백탕(白湯병탕(餠湯)'으로 기록되어 있다. 설날에는 멥쌀가루를 쪄서 목판 위에 놓고 절구로 무수히 내리쳐 길게 늘인 가래떡을 만들어 먹는다고 했다. 한자로는 장고병(長股餠)이라고 했는데, 팔다리처럼 길다는 뜻이다. 한 해를 무사히 살아내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조선시대 시문집인 지수재집에는 떡국과 만두를 만들어 새해를 센다는 대목이 있으며, 이 외에도 여러 기록과 작품에서 만둣국을 새해 음식으로 즐긴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시대에도 떡국과 만둣국은 새해를 축하하며 먹는 명절 음식이었다. 계층을 막론하고 설날 아침이면 누구나 떡국 한 그릇으로 한 살을 더 먹었다.

 

 

 

지역에 따라 떡국도 다르다. 서울은 맑은 소고기 육수에 고기와 지단, 김을 얹고, 북쪽으로 가면 만둣국이 되고, 개성에서는 조랭이떡을 먹는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굴이나 꿩을 넣기도 한다. 각 지역의 특산물과 식문화가 떡국에 고스란히 녹아든 것이다.

다른 지역과 달리 우리 영종도 떡국에는 바다의 풍미가 담겨 있다. 소고기 대신 제철 싱싱한 굴을 넣어 국물에 깊은 맛을 더하고, 떡국에 만두를 넣어 먹기도 한다. 특히 실향민들이 많았던 영종도는 명절 전이면 온 가족이 모여 앉아 김치만두를 빚었다. 그렇게 만든 김치만둣국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새로운 터전에서의 희망이 함께 어우러진 영종도만의 설날 음식이 되었다. 굴떡국은 겨울 바다에서 갓 건진 굴의 감칠맛과 굴이 떡과 어울어져 담백하고 달달하며 국물은 시원하다. 김치만둣국은 겨울 동안 익힌 김치만두의 매콤하고 국물의 담백하면 칼칼한한 맛이 조화를 이룬다.

 

2026, 변화무쌍한 국제 정세 속에서 관우의 강직함이 그대로 필요한 시대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향한 태도만큼은 여전히 유효하다. 적토마가 끝내 관우를 따랐듯, 우리도 지켜야 할 가치를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야 할 때다.

하얀 눈처럼 맑은 떡국을 앞에 두고, 붉은 말의 해를 시작한다. 하얀 떡국처럼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뜨거운 기운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한 해이기를. 새해 아침 가족이 둘러앉아 떡국 한 그릇을 먹으며 가래떡처럼 길고 건강하게, 둥근 떡처럼 풍요로운 한 해를 맞이하시기 바란다. 영종도 바다의 기운을 품은 떡국 한 그릇으로, 병오년의 힘찬 기운을 함께 나누길 바란다.